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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condition

2022-12-08 ~ 2022-12-24

1. 전시개요
□ 전 시 명 : 《happy condition》
□ 참여작가 : 김하나
□ 기 간 : 2022년 12월 8일(목) ~ 12월 24일(토)
□ 장 소 : 김세중미술관 1전시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원로70길35)
□ 관람시간 : 화~일요일, 11:00~17:00 (매주 월, 법정공휴일 휴무)
□ 관 람 료 : 무료
□ 미술관 홈페이지 : www.kimsechoong.com
□ 문 의 : 김세중미술관 학예팀 (02-717-5129 joyofarts@kimsechoong.com )

2. 전시글

회화의 충분조건(The sufficient conditions for paintings)_이성휘

김하나의 회화는 물질적이다. 그런데 그의 회화에서 캔버스, 빛, 색, 질감, 물성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은 쉽지 않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구체적인 형상이나 대상, 내러티브가 없지만, 그의 작업은 “회화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회화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 이 글에서 필자는 김하나의 회화를 처음 접했던 2016년경부터 2023년 현재까지 7년여의 시간 동안 그의 작업에서 무엇이 일관되었고, 무엇이 변했는지 살펴보면서 김하나의 회화가 보여주는 특이점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수많은 추상회화들 중 하나로 치부하고 지나치기엔 김하나의 작업은 시작 단계뿐만 아니라 이후 일정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 왔고, 그 변화의 양상이 일관적이면서도 독특했기에 작가의 작업 세계에 대한 좀더 면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필자는 그의 회화가 그간 캔버스(이젤) 회화를 이탈하는 회화적 조건을 찾고자 했고, 그 조건들을 하나씩 해체하고 갱신하면서 김하나 회화의 특이점을 만들어왔다고 본다. 그런데 21세기에도 캔버스 회화는 여전히 회화의 전형이자 룰로 군림하는 듯하다. 그러면 회화가 캔버스를 벗어나는 방법은 캔버스 회화를 부정할 때만 가능한 것인가? 김하나 회화에 대해서 논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하는 이 질문의 시작은 2016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는 김하나를 그의 첫 개인전 《빙하 풍경》(신한갤러리, 2016)의 리플렛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당시 전시를 보지 못했지만 리플렛을 보관하고 있던 터라 뒤늦게 연락을 취해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실견할 수 있었다. 그는 둘둘 말아뒀던 그림을 바닥에 펼쳐보이면서 작업을 설명했고, 작업에 참고한 빙하 사진들도 인쇄한 종이나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사진은 그 자체로는 새롭지 않은 하얗거나 푸르게 빛을 반사하는 거대한 빙하 풍경들이었다. 반면 작가가 보여준 그림들은 사진과 비교할 때 색채가 더 다양하거나 아예 다른 톤도 있었는데, 물감을 사용하는 방식도 프레임 된 캔버스에 그린 것도 있었지만 프레임이 안된 천을 바닥에 펼쳐 놓고 물감을 붓거나 채색하여 그린 그림도 있었다. 당시 작가는 “빙하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빙하 이미지를 보면서 느끼는 감각을 그린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때 작가가 빙하에 대한 감각을 강조한 것은 빙하 풍경의 숭고미에 대한 경외도, 비물질화에 대한 경외도 아니었다. 그는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것에서 끌어낸 미적 심상을 캔버스 위에 이미지로 정착시킬 방법을 찾는데 몰두했고, 모호하면서도 모호하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붓으로 형상을 묘사하기 보다는 캔버스로 이미지(물감)를 떠내는 것을 시도하였다. 캔버스를 프레임에 당겨서 고정하지 않으면 직물의 탄성 때문에 표면에 굴곡이 생기는데 김하나는 여기에 물감을 부은 후 고인 물감이 자연적으로 마르는 것을 기다렸다. 마치 사진암실에서 인화지에 이미지가 정착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캔버스와 물감 사이에서 (어느 정도는 비인위적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것은 장차 이미지의 기원에 대해, 또 회화의 기원에 대해 김하나가 더 몰두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 징후는 소거시킨 채 그의 회화를 추상회화로 범주화만 한다면 이후 이어지는 김하나 회화의 여러가지 단호한 시도들은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사실 김하나는 처음부터 작업의 방향을 회화라는 매체의 본질, 즉 회화에 대한 회화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빙하 풍경》 전시 당시 공개된 그의 작가노트를 살펴보자.

“...나의 관심을 끄는 빙하의 사진과 영상 이미지로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그후 계속적으로 다른 빙하의 이미지들을 접하며, 나는 캔버스 위에 예측 불가능한 비연속적 변화들을 도입시킨다. 결과적으로 시발점이 된 일련의 빙하들은 과정 속에서 붕괴되는 동시에 건설되어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지닌 빙하가 된다. 이러한 작업이 이어질수록 나의 관심은 회화 자체로 옮겨갔다. 회화란 매체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물감의 물성을 잘 이용한다면, 작가 스스로가 인위적인 즉 의도적인 변화를 도입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곳에서 회화의 자연스러움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빙하라는 매체는 조금씩 사라지고, 다시 우연적인 붕괴와 변화라는 본질로 회귀한다. 결국 작업이 이루어진 후에는 본래의 의도란 없던 것이 되며, 작업의 결과물이 사실상 나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타자, 그리고 주체로서의 역할을 실행한다.…” (김하나, 「작가노트」, 2016)

위의 글로 보듯이 빙하는 김하나의 캔버스 위에서 예측 불가능한 비연속적인 변화들을 끌어내기 위한 시작점이 되지만 캔버스에서 이뤄진 일들에 의해 다시 빙하는 사라지고 그의 회화는 우연적인 붕괴와 변화라는 본질로 귀결된다. 작가는 이 점을 회화의 자연스러움으로 칭하기도 했다. 즉, 그에게 빙하는 사진적 풍경이나 대상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작가의 감각과 인식을 풍부하게 해주는 자연이자 회화적 매개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캔버스에서 어떻게 붕괴와 변화라는 사건이 일어나는지는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지만 자신의 회화가 그 사건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확신하였던 것은 틀림 없다. 그리고 화가인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회화가 주체로서 역할을 실행한다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인데, 김하나는 자신의 회화가 그 자체의 내적인 힘에 의해 끊임없이 유동적인 상태로 스스로 존재하기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빙하 풍경 시리즈 이후 김하나의 작업은 한 가지 테마로 작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의 방향이 물질적으로 구체화되었고 공간상으로도 회화에 대한 실험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두 번째 개인전 《Little Souvenir》(갤러리 기체, 2018)에서 작가는 캔버스 프레임을 변형시키거나 표면 광택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회화의 주변과 대상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김하나는 이 시기의 시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의 첫 번째 개인전 《빙하 풍경》을 포함하여 2014년부터 2017년 사이의 작업을 돌아봤을 때, 무의식적으로 ‘주변과 대상’이 분간되지 않았던 작업과, 그 ‘주변과 대상’이 분명하게 나뉘는 경우를 찾아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작업에서 그러한 장면성을 방해하는 하나의 요소를 ‘표면의 주변과 대상’의 분리라고 판단하였다. 그 이후 나는 새로운 지향성을 가지고 2017년부터 추상적 회화의 ‘표면의 주변과 대상’의 관계와 구성 그리고 그 둘의 합일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였다.”(「김하나 -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소개」, 『인천문화통신 3.0』(2020년 4월 22일), 출처: http://news.ifac.or.kr/archives/21937(2023.9.10.) 이 말은 그가 회화 캔버스를 벽, 바닥과 같은 공간들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또 빛과 색채라는 측면에서 회화의 물리적인 표면 대비를 다양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작가는 개인전과 단체전을 연속적으로 이어나가면서 이에 대한 실험을 보여주었는데, 이 때의 작업들을 작가는 이렇게 개괄하였다: “‘주변과 대상’은 정사각형 그림 안 형상에서 시작하여, 두 번째 개인전 《Little Souvenir》 작업 과정에서 그림과 그림이 지지받고 있는 벽, 더 나아가 바닥과 천장을 처음 개입시켰다. 이어서 개인전 《White, Wall, Ceiling Rose》(공간 시은, 2018)과 단체전 《그림과 조각》(시청각, 2018), 《올오버》(하이트컬렉션, 2018)에서 전시 전체를 장면으로 설정하여 회화의 확장된 감각을 심도 있게 실험하였다. 네 번의 전시 모두 서로 다른 공간의 특성에 따라 새로운 작업을 선보였고, 같은 작업이더라도 다르게 변주하여 새로운 감각을 시각화 하였다.”(위의 작가 인터뷰) 그는 “캔버스를 변형하거나 캔버스 밑칠 안료와 벽면의 관계 또는 빛을 활용”하고, “곡선 유리 액자와 여백의 벽 또는 맞은편 그림과의 관계, 시선의 층위 차이 등”을 갤러리 공간에서 실험했는데, “단순히 2차원 평면 안에서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일 공간과 어떻게 합일하여 확장되는지 탐구”하기 위해서 벽, 천정, 바닥과 같은 기본적인 작품의 주변뿐만 아니라 창밖 풍경 등 전시공간의 내외부 환경까지도 작품과 관계하도록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위의 작가 인터뷰) 이때 캔버스의 물성과 질감, 공간의 빛과 만나는 표면의 광택과 색채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예컨대, (2018)은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캔버스로 구성되었는데, 먼저 두 개의 가로로 긴 캔버스를 전시장벽의 천장에 거의 닿도록 나란히 붙여서 건 후, 두 캔버스가 만나는 부분에 다시 작은 캔버스를 겹쳐 올려 설치한 작품이다. 세 개의 캔버스는 전체적으로는 광택이 나는 연보라색 물감으로 칠해졌지만 캔버스마다 붓의 움직임과 표면 색채, 질감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고, 두 개의 캔버스 모서리는 연두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 작품은 전시장 안의 채광과 작품을 올려다보는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작품 표면과 모서리가 미묘하게 색채가 달라지거나 발광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작가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표면이 표현의 지점을 넘어서 주체가 되는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더 구체화시키는 연구”로 나아가고자 하였다.(위의 작가 인터뷰) 한편, 이 시기에 작가는 침대나 문 등 사물을 직접적으로 모티프로 삼은 작업들도 제작한 바 있는데 그 중에서도 침대를 모티프로 삼은 작업들을 여러 차례 제작하였다. 침대를 모티프로 한 작업들에서 김하나가 공통적으로 보여준 실험은 각각 침대헤드와 침대보에 해당하는 캔버스의 물리적 구분 및 표면의 시각적인 대비였다. 그는 《Little Souvenir》 전시에서 행잉 형태로 침대 모티프의 작품을 먼저 선보였는데, 이때 행잉한 캔버스 천의 하단부의 비스듬한 침대보 부분에만 사다리꼴 형태의 프레임을 덧대었다. 《올오버》 전시에 선보인 작품에서는 그림 자체를 둘로 나누어 그린 후 전시장 벽에 설치할 때 연결하였는데, 상단부는 사다리꼴 형태의 프레임에 캔버스를 씌워 상대적으로 견고한 침대헤드를 표현하고, 하단부의 침대보 부분은 프레임이 안 된 캔버스 천을 훌렁거리는 채로 그대로 드리우는 방법을 취했다. 작가는 이 작품이 전시장 바닥에 거의 닿을 정도로 낮게 설치함으로써 이따금 실내에서 생기는 공기의 움직임(바람)에 의해 캔버스 천이 살랑거리듯 움직이는 모습이 관찰되게끔 했다. 이러한 캔버스의 물리적 상태와 공간 내 상황은 화면 속 침대의 상황에 그대로 반영되는 효과로 연결되는데, 즉 모티프가 된 대상의 광택, 질감, 운동성 등과 같은 물리적 성질을 그림 자체가 지니게 함으로써 회화의 주변과 대상의 상황 자체를 회화의 조건이자 내러티브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후 《Beau Travail》(송은아트큐브, 2019) 전시에서도 김하나는 회화의 물리적 상황을 전시의 중요한 상황이자 이야기로 펼쳐 보였다. 마찬가지로 그림의 재료와 도구, 캔버스의 구조나 결합 상태가 회화의 내러티브가 되게끔 유도하였다. 동시에 그는 회화의 표면, 질감, 물성 등에 대한 자신의 감각과 역할을 전시제목인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칭함으로써 회화를 둘러싼 미학적 경험이 소통되는 방식을 언어로 치환하고자 하였다. 이미 작가는 《Little Souvenir》 전시에서 자신의 회화 작업을 낯선 경험과 감각을 감상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일종의 ‘작은 기념품’에 빗대었다. 당시 작가는 자신이 여행 기념품으로 간직한 작은 엽서가 시간이 흐른 뒤에 생경한 기분으로 다가왔던 경험과 감각을 작업 전반에 반영하고자 하였고, 작품의 크기와 작품이 매개하고자 하는 감흥과 실제 공간과의 크기의 대비를 강조하기 위해 《Little Souvenir》라는 제목을 선택했다.(《Little Souvenir》 전은 모두 다른 표면을 가진 9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작가는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보이는 회화의 섬세한 표면들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이 ‘작은 기념품’을 통한 경험이나 감각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였다(작가의 이메일, 2023.9.26). 《Beau Travail》라는 제목은 클레어 드니 감독의 동명 영화(1999)를 떠올리게 하는데, 김하나는 화가로서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화업을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직업’으로써 빗대어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전시제목이나 시리즈 제목의 작법 방식은 작가가 언어를 통해 회화에 대한 해석에 간섭 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감상자의 감상 방식과 태도를 유도하거나 개입하는 방법이다. 즉, 빙하 풍경 시리즈 시절과는 다르게, 김하나는 회화의 경험과 감각을 자신의 신체적, 언어적 개입으로 주도하기 시작했다.

한편, 김하나는 인천이나 태안처럼 바다와 면한 지역에서 작업실을 사용하면서 산책과 사색을 즐기는 습관을 한동안 유지하게 되었다. 특히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체류 시절에 바다를 바라보면서 산책과 사색을 한 경험들은 기억 속 모호한 이미지들에 대한 감각보다는 당장 자신의 눈 앞에 있는 현재의 이미지들에 대한 감각, 특히 생생한 공간적 감각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당시 그의 머리속 한켠에는 천장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언덕과 계단이 많은 인천 구도심을 산책하면서 다양한 층위로 하늘, 땅과 만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경험을 하였고 이를 통해 하늘, 땅, 바다에 대해 새로운 공간적 시선을 획득하게 되었다.(그는 2010년경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서 싸이 톰블리가 그린 천장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인천아트플랫폼에 체류하던 시절에 이 천장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는 그의 개인전 《Beau Travail》의 서문을 쓴 정현이 첫 문장으로 인용한 장 뤽 낭시의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장 뤽 낭시, 이영선 역, 서울: 갈무리, 2012)의 한 구절인 “하늘은 땅의 표면에서 시작합니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작가의 이메일, 2023.9.26) 그는 “당장 천장화를 그릴 수 없다면 땅을 그리다 보면 언젠가 알 수 있겠다”(위의 이메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 바다 표면을 땅으로 간주하여 바라보는 시선과 이 표면과 마주하는 하늘에서 새롭게 포착한 공간에 대한 작업들을 진행하여 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 갤러리에서 《Brown, Blue, Ceiling, Shipping》(인천아트플랫폼, 2020)이라는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에서 김하나는 윈도우 갤러리 한켠에 일련의 그림들을 시선 높이 만큼 공중에 수평으로 눕혀서 설치하였는데 이 때문에 관람자는 윈도우 갤러리 측면에 있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만 그림의 표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후 열린 개인전 《Sea Bathing》(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1)에서 작가는 천장화에 대한 관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사루비아 전시공간이 큰 기둥 두 개가 천장을 받치고 있는 지하 전시장이라는 특징을 활용하여 이 공간을 수영을 할 때 접촉하게 되는 수면에 대한 감각을 환기시키는 공간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그는 잠수하거나 물 위로 나올 때 경계가 되는 수면을 천장 또는 땅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천장이 되기도 하고 땅이 되기도 하는 물의 표면에 대한 생각을 전시에 반영시킨 것이다. 이는 바다와 주변 환경에 대한 사색을 뛰어 넘어, 땅, 하늘, 바다와 같은 공간의 본질적인 구조의 위계가 뒤집히는 현상을 작가가 신체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으로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위의 이메일) 작가는 “현대회화 작가로서 ‘왜 아직도 그림을 그리는가’를 계속해서 질문하며, 매체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행위, 그 자체가 어떠한 불확실한 것에 대한 짐작임과 동시에 단단한 현실과 대비를 이루어내는 유기적인 추상적 회화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본인이 “직접 몸이 개입하여 실제로 감각할 수 있는 질감과 물성을 탐색하는 일”을 “지난 긴 회화의 시간 속 표면 탐구와는 다른 감각과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김하나는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이와 보는 이 모두가 질감과 물성을 새로이 감각할 수 있는 회화적 언어와 작업 방식”을 추구한다.(위의 작가 인터뷰) 그것은 빛과 중력이 있는 공간에서 신체적으로 지각되어지는 매우 실재적인 회화다.

2022년 연말에 열린 개인전 《Happy condition》(김세중미술관, 2022)은 질감과 물성에 대한 김하나의 탐구에 새로운 전환을 보여주었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사물 그 자체를 회화적 현전이자 육화된 이미지의 구성요소로써 사용하였다. 전시 제목인 ‘행복한 상태’는 “말을 타기 위해 사용되는 안장을 행복한 상태를 분배하는 따뜻한 장치로 바라본” 작가의 시선과 태도를 반영한다. 전시에서 그가 선보인 일곱 점의 작업은 안장과 말의 관계를 회화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작품들의 크기가 대략적으로는 캔버스 150호 정도가 되며, 실제 말 한마리의 프로파일과 비슷한 스케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통상적인 프레임에 천을 씌운 캔버스가 아니라 합판 패널과 몰딩을 지지대로, 폴리에스터 재질의 얇은 담요를 캔버스로 사용하였다. 특히 얇다는 점에서 취약성을 가지지만 따뜻함에 기능을 둔 폴리에스터 담요를 캔버스로 선택하여, 인간과 말 사이에 놓인 안장과 같이 그림을 그리는 자신과 담요 사이에 일종의 새로운 회화적 실천의 합의점을 찾고자 하였다.(위의 이메일) 그는 흡습성이 낮고 신축성이 없는 재질에 물결 형태의 끝단처리가 되어 있는 담요들로 나무 패널을 부분적으로 덮거나, 담요를 접거나 겹쳐서 화면을 분할하는 방식으로 화면 안에 적절한 균형을 만들었다. 담요 끝단의 물결 형태나 나무 패널 끝의 몰딩의 곡선에도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데, 특히 바닥에 우아하게 착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몰딩의 우아한 곡선은 다리 끝까지 털이 덮여 땅과 닿아 있는 아이리쉬콥의 다리를 연상시킨다.(위의 이메일) 진한 색채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작가는 전체적으로 가로 방향의 붓질을 사용하여 담요 위에 유화 물감을 여러 겹 올렸는데, 물감의 착색이 두텁지 않은 탓에 표면 광택은 물감보다 직물에 의한 것이었다. 대체로 좌우대칭적인 화면 분할과 담요의 겹침과 접힘은 말안장의 어떤 형태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전시 공간의 채광은 수평선 멀리 평온한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들은 김하나의 전 작업을 통틀어 가장 사물에 가깝고, 작품의 물리적 상태가 이미지 그 자체가 된 작업들이다. 그리고 “회화는 무엇인가?”, “하나의 작품이 회화가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지금 당신의 머리 속에서 회화라고 긍정되어지는 작업들은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는가? 그 조건들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와 같이 회화의 조건에 대한 질문들을 직접적으로 촉발시키고 있다. 이 작품들의 표면은 비재현적인 이미지, 즉 형상보다는 빛과 색의 뉘앙스만 드러낼 뿐인 이미지로 뒤덮여 있지만 동시에 그 이미지가 그 자체로 작품의 물리적 상태와 일치함으로써 그간 김하나가 추구해온 ‘질감과 물성을 새로이 감각할 수 있는 회화’가 된 것이다. 사실 우리는 회화가 이미지이자 물질이라는 전제조건에 동의해 왔지만 대체로 이미지에 대한 분석에 치우친 나머지 회화의 물질로서의 조건에 대해서는 부차적으로 다뤄왔던 것 같다. 그러나 회화는 건축에서 분리되자 비로소 물질과 몸을 획득한 이미지가 된 것이고, 캔버스(이젤) 회화는 사실 회화의 본질도, 기원도 아니다. 김하나의 작업은 관성에 의한 회화가 아니라, 이미지로서의 회화, 물질로서의 회화의 출발점을 스스로 질문하고 감각하기를 거듭하면서 새로이 짚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긴 역사를 거친 회화라는 매체는 이제 회화의 기원인 그 시초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개별 작가들에게 최초의 회화적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김하나는 어릴 적 자신이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기보다 색칠 그 자체를 좋아하고 언제나 색을 궁금해 하는 아이였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현재 김하나의 회화는 물질로서 정동의 대상이 되는 이미지다. 그는 현재를 살고 있으며 자신의 그림 역시 현재 시공간에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작업에는 거대한 역사이자 관념이자 물질인 회화가 김하나에 의한 회화로 되어가는 시간이 담겨 있다. 이때 김하나는 회화의 역사나 거대한 관념으로서 압도하는 회화보다는, 김하나라는 한 작가의 몸, 정신, 감각으로 지각되어지는 공간과 물리적 실재에 집중한다. 그는 캔버스, 프레임, 물감, 색, 질감, 광택 등 모든 것들을 주목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작품의 공간적 상황과 관람자의 시각적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색채, 표면 질감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회화의 본질, 회화에 실재하는 조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김하나의 회화는 회화의 충분조건을 만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