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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전시

김주환 개인전 < Trimūrti - 시간의 세 얼굴 >

2023-07-04 ~ 2023-07-23
□ 전시기간 : 2023년 7월4일- 7월23(일) (11: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 초대일시 : Time of Siva (파괴의 시간) 2023년 7월21일(금) 오후3시 김세중미술관 1전시실
□ 참여작가 : 김주환 (KIMJUHWAN)
□ 후 원 : 강원특별자치도, 강원문화재단
□ 입장료 : 무료

■■ 기획의도 ■■
이 전시는 <삼수령>이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출발한 두 가지 재료가 각각의 물성, 특질, 역사 문화적 의미를 동력으로 매우 다른 느낌의 조형 작업으로 해석되어 전시되는 체험형 설치프로젝트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지난 2년간 연구해 온 물질 ‘피자 세이버’를 통해 모든 생명체, 혹은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에 깃들어 있는 탄생-삶-죽음을 체험하고 명상하는 ‘미술공연’의 새로운 형식을 선보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 알 한 알의 모래가 쌓여 거대한 모래성이 되고, 그것이 해체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관람자가 느린 호흡으로 따라가며 체험할 수 있는 미술공연을 펼치고자 한다.

■■ 전시구성 ■■
김세중미술관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약 한 달 동안 진행된다. 6월27일부터 작품 설치가 시작되고, 7월4일부터 미술관의 1, 2전시실에서 전시되며, 7월21일 오후 3시에 펼쳐지는 해체 작업을 통해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작품은 다변적이고 과정적 설치 작품으로 김세중미술관 각 전시실의 장소 특정적 환경과 공간 형태에 맞게 구성된다.
<1전시실-'유목과 은둔의 집'>과 <2전시실 - ‘숲, 홀로 서는 사람들'>의 독립된 두 공간은 각기 다른 소재(플라스틱/나무)를 기반으로 설치된다.
1전시실은 기성의 플라스틱 '피자세이버' 유닛들을 쌓아 올리고 해체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행위의 공간’과 지속되고 있는 '관조의 공간'으로 구성한다.
2전시실은 검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설치작업으로 작가가 나무 위에 닦아놓은 길들을 눈으로 따라가며 시간여행을 하는 ‘관조의 공간’으로 구성한다.

<1전시실-'유목과 은둔의 집'>

Act 1 : 『창조의 시간』 창조의 시간이 시작되면 전시실 바닥에 하얀 모래가 뿌려진다. 이 모래 위에 ‘화엄일승법계도’의 형태가 반복되며 연결되는 드로잉이 그려진다. 이 드로잉 위에 기성의 ‘피자세이버’를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다. 한 사람이 하루 8시간 동안 쌓을 수 있는 피자세이버는 대략 5천 개 정도이다. 이 작품은 관람객의 참여가 가능한 프로젝트로 작가와 참여자들은 일정 부분 함께 쌓으며 일주일 동안 총 20만 개의 피자세이버를 축적한다. 관람객들은 매 순간 매시간 매일 조금씩 성장해 가는 작품을 볼 수 있다. 본 전시에서는 전 과정을 영상미디어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Act 2 : 『유지의 시간』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은 대략 5m×7mx2m40cm(높이) 이상의 구축적 위용으로 드러나게 된다. 유지의 시간에는 20만 개의 피자세이버가 쌓아 올려진 장엄한 구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고딕 성당, 타지마할, 이슬람사원, 빌딩 숲 같은 건축적 이미지와 동양의 산수화 같은 여백의 느낌, 또는 중첩된 천이나 종이, 생물의 뼈, 빙하나 오로라와 같은 거대한 자연 등 다양한 연상이 가능하다. 이 기간 동안 관람객들은 구축물 안팎에서 작품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구축물의 내부에 들어가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고요한 하얀 벽(그러나 막혀있지 않은) 안에서 체험가능한 자연의 빛과 공간의 환영은 ‘몽유도원’과 같은 공감각적 체험을 가능케 한다.
김세중미술관의 1전시실은 큰 창문이 많아 자연광 효과가 좋은 장소이다. 이러한 전시공간의 특성은 작품을 실내전시에 머물지 않게 하며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빛과 자연광의 뒤섞임 속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간적 체험을 더욱 강화시켜 줄 것이다.

Act 3 : 『파괴의 시간』 셋째 주에는 이 거대한 구축물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이벤트가 연출된다. 구축물의 바닥 면에서 봉과 줄을 이용하여 구축물을 와해시키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진다. 파괴 시간은 대략 2분가량 소요될 것이다. 20만 개의 피자세이버가 무너져 내리는 광경은 마치 거대한 빙하가 바다와 만나 떨어져 부서지는 듯, 그것들이 부딪혀 내는 소리와 더불어 시각적 충격을 극대화하도록 연출되어 짧은 시간 충격적인 시각 경험이 가능하도록 의도되어 있다.
이후 평온해진 하얀 잔재물들은 모래와 함께 조용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이렇게 해체된 잔재가 마지막 날까지 관객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3주에 걸친 전 과정을 통해 비로소 ‘창조-유지-파괴’의 느린 미술공연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영상물로 제작되어 미디어룸에서 상영된다.

<2전시실 - ‘숲, 홀로 서는 사람들'>

1전시실에서는 3주 동안 '유목과 은둔의 집' 작품이 탄생-삶-죽음 전 과정이 미술공연으로 이루어진다면, 2전시실에서는 나무의 흐름을 찾아 깎고 표면을 태운 작품들이 숲을 이루는 설치 작품 ‘숲, 홀로 서는 사람들’이 전시된다. 유리 너머 갇혀진 공간 속에서 우리가 시간을, 풍경을, 기억을 박제하는 방식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전시장 바닥은 검은 바이오차(Biochar) 로 뒤덮이고 검게 탄 숲은 침묵으로 우리와 대면하게 된다.

■■ 전시글 ■■

Time present and time past
Are both perhaps present in time future,
And time future contained in time past.
If all time is eternally present
All time is unredeemable.
......
Time past and time future
What might have been and what has been
Point to one end, which is always present.

T.S. Eliot - ‘FOUR QUARTETS’

깎고 구축하다 보면

안소연(미술비평가)

1. 김주환의 조각은 ‘중간존재(interbeing)’를 자처한다.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élix Guattari)가 ‘리좀(rhizome)’의 특성으로 설명한 개념이 중간존재다. 말하자면, 시작도 끝도 없이 서로 연결되어 비위계적으로 확장해 가는 “되어감(becoming)”을 근거로 하는 개념이다.1) 그동안 김주환은 일종의 연금술적인 감각으로 임의의 형상이 공간 속에 출현할 “상황”을 꾸려왔다. 어떠한 물질이 됐든 사물이 됐든, 그는 그것의 (유일무이한) 근원적 형태에서 벗어난 다수의/복수의 형상으로 연결을 시도한다. 그것은 한 점에 닿고자 하는 목적도 없고, 우회하고 변환하며 연쇄하는 형상에 대한 사유를 이끈다. 연금술사처럼 철을 녹여서 일체의 양가적인 구분이 상쇄되는 형태의 변환을 시도했던 그간의 작업을 떠올려 볼 때, 김주환은 공간 속에서 “형상”의 출현 그 자체 보다는 그러한 사건을 발생시키는 끝없는 시간적 “변환”에 더욱 몰두해 왔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 제이 에멀링, 『20세기 현대예술이론』, 김희영 옮김, 미진사, 2015, pp. 197-209 참고.

무게와 강도, 색채와 질감, 그 재료가 본성적으로 갖고 있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대면하여, 김주환은 그동안 철을 다루는 연금술적 조각가로서 제 역량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왔다. 동시에 그는 그러한 재료의 변환에 관한 사유를 “자연”과 그것이 이루는 “풍경”에서 얻은 깊은 경험적 통찰로 실체화 한다. 예컨대, 빛과 바람과 물결 등이 조성하는 자연의 풍경을 통해 지각하고 경험한 일련의 사건을 조각적인 재료와 형태의 관계에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조각가인 그는 땅을 경작하며 거기서 소산을 얻는 농부의 삶을 병행한다. 조각가와 농부의 삶은 그에게서 꽤나 자족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곤 하는데, 그 노동의 목적이 마치 (연금술적인) 그 행위 자체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 둘의 노동은 서로 연결되어 미세한 차이 속에 교차하며 서로를 반영하는 가운데, 조각은 점차 농부의 땅을 닮아가고 밭의 소산은 나름의 조각적 의미를 갖추어 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김주환의 조각은 어떤 형상으로의 되어감을 향한 잠재력을 좇는다.

2. 그의 최근 작업은 산과 물과 땅에 관한 사유에 닿아 있다. 이들을 관통하고 있는 화두는 “흐름(flow)”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는 그의 철 용접 작업에서도 가장 포괄적인 의미를 지녔던 개념으로 들뢰즈와 가타리의 리좀에 관한 논의와도 많이 닿아 있다. 이전 작업에서 종종 언급됐던 “물결” 혹은 “파동”처럼, 그는 이 세계 안에 작동하고 있는 힘의 물리적 이동과 변환이라 말할 수 있는 “흐름”에 관한 추상적 사유를 조형적 원리로 구축해 왔다. 말하자면, 삼차원의 현실 세계를 작동시키는 물리적인 힘과 그것에 대한 추상적 사유를 거쳐 조형적 구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최근 작업의 재료와 형태에 있어서 다소 큰 변화가 보이긴 해도, 그의 조형적 사유를 매개하는 개념에 있어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최근 작업에서 김주환은 길가의 고사목을 (허가를 받고) 벌목해 가져다가 껍질을 벗기고 형태를 다듬어 땅 위에 다시 세울 수 있는 조각의 형태로 바꾸어 놓았다. 그 첫 단계를 보여준 전시가 ⟪물의 여정, 나무의 길⟫(2022)이다. 그는, 어떤 것은 벽과 바닥 사이에 기대어 놓고, 어떤 것은 벽에 걸고, 또 어떤 것은 땅과 받침대 위에 홀로 세워 놓았다. 이에 대하여 ‘삼수령(三水嶺)’을 작업의 모티프로 제시한 바 있는데, 삼수령이라는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추상적인 조형 개념으로 전환하여 “발산과 수렴”의 원리를 도출한 셈이다.[*작가의 “삼수령-물의 여정: 발산과 수렴의 형태학” 전시 기획안 참고] 그는 삼수령의 지질과 지형의 특성상 산과 물의 줄기가 갈라지고 다시 만나는 발산과 수렴의 원리를 파악해, 이를 조형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일련의 재료와 형태의 관계를 모색했다.

요컨대 ⟪물의 여정, 나무의 길⟫은 땅과 물에 관한 개념을 탐구하고 성찰하여 이를 나무의 조형성에 대입하여 추상적인 사유로 연쇄시키는 작업의 맥락을 포괄한다. 다만, 그는 뿌리와 몸통과 나뭇가지와 이파리로 하나의 위계 아래 연결된 수목적(arborescent) 구조에서 벗어나, 되레 (죽음에 의해) 그 수목성으로부터 분리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 다수의 형상들을 탐구한다. 이는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벗어난 임의의 형태가 물질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은 채로 또 다른 다수의 형상으로 “되어감”을 시도하는 역동성을 자아낸다. 김주환은 나무의 껍질을 벗겨 마치 형태의 윤곽이 고정되는 상황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려는 것처럼 어떤 유동적인 상태를 좇는다.

그는 “삼수령”을 예로 들어 물의 분수계에 주목하는데, 사실상 그가 강조하는 것은 “발산과 수렴”의 에너지가 공존하는 역동적인 중간지대로서의 분열적 감각에 가깝다. ⟪물의 여정, 나무의 길⟫에는 껍질을 벗겨 말끔하게 다듬어 놓은 나무의 몸통과 가지가 신체의 토르소나 부분-대상들처럼 “다수성”을 함축하면서 추상적 감각 이상의 형태적 창발을 매개한다. 김주환은 “나뭇가지의 생태적 분화 구조 연구를 통한 조형 작업”이라 말하는데, 엄연히 말하자면 그가 제시하는 조각은 나뭇가지의 생태적 분화 구조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되레 생태 구조 속에 잠재되어 있는 다른 차원의 리듬을 분석하고자 하는 상상력을 동반한다.

그는 그 대상에 있어서 실제의 현실적인 크기와 무게에 연연하지 않고,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공간감을 계속해서 변환시키는 가운데 그것과 대면한 신체적 경험을 공간적 차원에서 조율하는 가상성을 환기시킨다. 이를테면, 중력을 거슬러 자라나던 나뭇가지를 중력에 호응하는 형태적 지지체의 자리에 옮겨다 놓음으로써, 본래의 수목적 구조에서 탈피한 걷는 사람의 운동성을 은유한다든가, 벽과 바닥을 임의의 꼭짓점으로 잇는 구조 안에서 산이나 물의 비탈진 줄기를 암시하면서 거대한 공간에 대한 상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한편, 아주 미시적인 혈관이나 세포의 구조를 들여다 보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시지각적 변환을 시도하는가 하면, 별자리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일련의 형태들이 우주적인 상상력과 연계돼 지각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차원의 대상을 가늠해 보려는 인간적인 욕망을 일깨우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물의 여정, 나무의 길⟫ 전시 이후에 곧 이어서 ⟪검은 빛 흰 그늘⟫(2022) 전시를 열어 그 다음 단계로의 변화를 보여줬다. 껍질이 벗겨진 채 여러 형상에 대한 상상력을 부추겼던 고사목 조각들은 검게 변해 있었고, 일찌감치 함께 준비하고 있었던 플라스틱 사출 유닛 설치 작업도 두 번째 전시에 포함됐다. 김주환은 ‘MoDaC(Morphology of Divergence and Convergence, 발산과 수렴의 형태학)’ 시리즈 표면을 불로 그을려 검게 태워 새로운 형태로 변환시켜 놓았으며, 피자 고정핀과 그것을 플라스틱 사출로 복제한 유닛을 사용해 일련의 건축적 구조물을 세웠다. 마치 검은 산과 하얀 빛에 둘러싸인 도시처럼, 한 공간 속에 자리한 두 개의 풍경은 서로 대구를 이루면서 각각 제 형상과 제 스케일을 조율하는 것처럼 보였다.

3. 김주환은 ⟪검은 빛 흰 그늘⟫에서 “발산과 수렴”의 양가적인 운동성을 동시에 매개하는 조형적 구조를 펼쳐 보였다. 이는 “삼수령”에서 출발해 조각적 구조로 옮겨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현존하는 어떤 형상들로 제시되었으며, “중간존재”로서의 임의성과 접속력을 크게 부각시켰다.

검게 그을린 나무들은 물질과 형상의 중간 단계에 처해 있으면서, “되어감”의 여정 속에서 발산과 수렴의 운동성을 끊임없이 교차시키고 있었다. 땅 위에 선 채로 죽어 있었던 고사목의 연장에서,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희미한 망상 속에 현존하는 유령의 이미지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나무의 수목적 구조가 더이상 유지될 수 없는 형태를 뒤집거나 옆으로 눕혀 그 형태의 윤곽을 중력을 향해 (아래로) 흐르게 했다. 하천의 흐름처럼, 산의 가파른 능선들처럼, 혹은 몸통에 연결된 팔다리의 유연한 형태처럼, 원래의 수형에서 벗어나 윤곽 너머로 숱한 공간들을 재구성해 가면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조각적 형상으로 변환을 꾀했다. 이는 현대 조각이 고전적인 형태상의 내적 논리에서 탈피해, 그것이 여타의 신체와 환경, 시간과 공간 등과 접속[연결]하여 제 형상을 변환하고 갱신해 가려 했던 일련의 정황들을 시사한다.

한편 피자 고정핀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업에서, 김주환은 그 형태를 조금 고쳐서 하나의 조형 단위로 사용했다. 삼발이 구조를 가진 사물의 형태에서 그는 이슬람 건축의 ‘무카르나스(Muqarnas)’ 양식에 대한 연상과 그 이름의 유사성에 의해 동굴의 종유석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검은 빛 흰 그늘⟫에서, 검게 그을린 나무의 형상들이 “검은 빛”의 영역을 가시화했다면 “흰 그늘”에 대한 은유는 흰색 플라스틱 유닛의 거대한 구축물이 담당한 셈이다. 김주환은 전시장의 공간을 둘로 나눠 둘의 형상을 마주하게 배열했는데, 흰색과 검은 색, 자연물과 인공물, 빛과 그림자 등과 같은 양가적인 대립 구도를 그는 이질적으로 분리했다기 보다는 그 둘이 접속하는 수수께끼 같은 중간지대의 에너지를 보고자 했던 것 같다.

사실 무한히 증식할 수 있는 이 건축적 구조물은 고사목의 형상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운동성을 반영하기도 하며, 이 둘 사이를 매개하는 삼수령과 그것이 파생시키는 산과 땅과 물의 형상을 암묵적으로 투영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흰 색의 유령 같은 구축물은 도시의 거대한 빌딩숲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산 능선과 깊은 물길 혹은 땅에서 자라나는 돌기둥처럼 끊임없이 망막을 조율하며 제 현존을 과시한다. 실제로 굉장한 노동과 시간을 할애하여 설치를 완성한 이 작업은 전시 공간 안에서 관객의 동선을 만들어내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데, 그것이 시각적인 경험에서 벗어나 신체적 지각과 인식으로 변환되는 마술 같은 힘이라 보여진다. 이 거대한 형상은 시작도 끝도 없고, 서로의 “연결”에 필연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체다. 이는 동굴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이나 지표 밑에 묻어 있는 뿌리 줄기들처럼 무한히 증식하는 중간존재로서의 연결점을 한껏 부각시킨다.

요컨대, “발산과 수렴”으로 환원되는 일체의 조형적 실험은 조각의 가장 근본적인 실천을 일깨운다. 깎거나 붙이고, 배열하고 구축하는 조각적 행위가 자연의 풍경 속에 내재하는 발산과 수렴의 에너지와 동일시 되어, 그의 조각에서는 (새로운) 형상을 출현시키는 흐름을 발생시키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조각은 농부의 노동처럼 솔직하며 그가 자연에서 얻어오는 형상들은 자족적이긴 하나 스스로 무엇이 “되기” 보다는 세계를 투영시킬 (흑백의) 투명한 지지체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 작가 소개 ■■

■ 김주환 (b.1974) artplanarea@naver.com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2003년부터 22년째 강원도 하대리에서 생활하며 작업하고 있다.

■ 개인전
2023 "Trimurti - The Three Faces of Time", 김세중미술관, 서울
2023 "EPHEMERA (蜉蝣)-발산과 수렴의 형태학", 횡성문화예술회관 전시실, 횡성
2022 "검은 빛 흰 그늘 – 발산과 수렴의 형태학", 횡성문화예술회관 전시실, 횡성
2022 "물의 여정, 나무의 길 – 발산과 수렴의 형태학", 횡성문화예술회관 전시실, 횡성
2021 "적거(滴鋸) -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횡성문화예술회관 전시실, 횡성
2020 "혼방된 상상력의 한 형태-사이렌의 노래 혹은 예술의 본질에 대하여", 김종영미술관, 서울
2020 "사이렌의 침묵-미흡한, 심지어 유치하기까지 한 수단조차도 구제에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 횡성문화예술회관 전시실, 횡성
2013 “비틀비틀 걸어가 우물을 들여다보다”(跰躚而鑑於井), 내촌창고, 강원 홍천
2011 “一破萬波” (Sudden Enlightenment), 조선일보 미술관, 서울
2008 “화엄과 禪 線 善”, 월정사 성보박물관 초대전, 오대산월정사, 강원 평창
2007 “百紋,不餘一絹”, 한전프라자갤러리, 서울
2006 “대지와 휴식의 몽상”, 강원랜드, 강원 정선
2005 “선에관한각서 - 숲속조각가의 나들이”, 안양롯데갤러리, 경기 안양


■ 수상 / 선정
2020 ‘오늘의 작가’ 선정, 김종영미술관
2014 하슬라아트월드 국제 레지던시 선정
2012 농어촌희망재단 문화예술기반조성사업 기획 선정
2010 ‘2010년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기획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강원문화재단
2009 ‘새로운 예술세계의 개척’프로그램 기획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8 '제3회 포스코스틸아트 어워드‘ 대상
2008 ‘예술 창작 및 표현활동 지원’프로그램 기획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7 ‘제8회 신사임당미술대전’ 특선
2007 ‘제9회 단원미술대전’ 특선
2006 신진예술가 지원작가 선정, 문화예술위원회
2006 송은미술대상전 장려상
2005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2005 강원랜드 입체조각전 특선